좀 많이 늦은 회고를 작성해본다. 2018년은 적지만 큰 변화가 있었다. 이직했다. 당연히 개발적으로도 큰 변화가 있었고, 아직도 적응 중이다. 이직에 대한 경험을 남기고자 한다.

이직

전 회사 NHNEntertainment에서 만 3년 8개월을 다녔고, 새 회사 토스(Toss, Viva Republica)로 이직했다. 사실 처음부터 이직 생각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리쿠르터분의 말씀에 토스팀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토스팀으로의 이직은 사용자가 많은 서비스, 스타트업에 대한 경험과 도전이라 생각했다.

아래 과정을 진행해 토스팀에 합류했다.

  1. 서류
  2. 기술 과제
  3. 기술 면접
  4. Culture 면접
  5. 처우 협의

첫 이직이다. 이직한다는 것 자체부터 모든 게 낯설었고, 어색했다. 정신적인 피로가 많았다. 조직장에게 이직하겠다 말을 꺼내는 것부터 어려웠다. 하지만 무를순 없었다. 어렵사리 말을 꺼내 퇴사 과정을 진행하고,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에게 소식을 알리며 떠날 준비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이 퇴사 소식을 알았다. 소문은 참 빠르다. 다들 회사 어딘가에 귀가 하나씩 더 있다. 그렇게 퇴사를 앞두고 보니 시간이 느껴졌다. 동료들과 대화하는 시간, 일하는 시간, 앞으로 회사에 다닐 시간, 새 회사 합류에 남은 시간, 기억에 남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냥 느껴질 뿐이었다.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잊혀져갔다. 시간은 기록해야 남는다. 기록이 없다면, 정말 흐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과 기대의 감정은 동시에 들었다. 아마 이직을 앞둔다면,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 당시 회사에 큰 불만이 없었고, 팀에 아주 만족하고 있었기에, 새 회사에서도 이렇게 적응하고 잘 다닐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이 있었다. 그리고 새 회사의 성장, 방향, 업무 스타일 등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은 현실적인 그 어떤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그냥 내가 잘하면 된다였다. 이런 감정들을 계속 들고 있어 봐야 변하는 게 없고, 이직을 되돌리기엔 늦은 상황이었다. 소모적으로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종종 행복한 생각도 했다. 대부분이 그렇듯, 이직하면 월급이 오른다. 오른 월급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돈을 얼마나 더 모을 수 있을지 등의 생각을 했다. 잠이 안 오거나, 여러 감정이 올라올 것 같으면, 월급 생각을 했다. 월급 생각은 여러 감정을 뿌리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다. 때론 꿈에 젖는, 때론 현실적인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아무 의미 없다. 지금 받는 월급을 어떻게 쓰고 활용하냐는 중요하지 않다. 월급은 단지 먹고사는 데 지장 없도록 사용하고, 시간이 남으면 돈 생각이 아닌 스스로 어떻게 성장할지 생각해야 한다. 지금 월급이 올라서 좋은 것은, 평상시에 돈 생각을 조금 더 안 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다.

업무

토스팀에 합류했고 새로 경험하는 것들이 많다. 토스는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빠른 성장세를 기록했고, 유니콘 기업이 됐다.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크게 궁금하진 않았지만, 그냥 알게 됐다. 개발 속도가 정말 빠르면서 퀄리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업무 시간을 따로 생각하지 않는다. 토스팀에는 ‘Peer Pressure’가 있다. 서로서로 압박한다는 뜻인데, 사실 부정적으로 보기 딱 좋은 말이긴 하지만, 실제 느끼는 것은 동료에게 부담과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는 것으로 느껴진다. 여기에 대해서는 부정적 해석도, 긍정적 해석도 있을 것 같지만, 아무튼 회사 성장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스타트업은 치열하다. 분석, 전략부터 개발까지 모두 치열하고, 다른 모든 무엇보다도 먼저 한발 앞서야 생존한다. 토스 정도면 그렇게 치열할 필요가 있을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조금만 방심해도 뒤처질 수 있다고 느낀다. 네이버/카카오와 같은 플랫폼으로의 힘을 낼 수 있지도 않다. 그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UX를 생각해야 하고, 그래서 더 치밀하게 분석하고 더 빠르게 개선한다.

전 회사나 토스팀에서나 역할은 프론트엔드 개발이다. 그렇지만 전 회사에서는 데이터가 어떻게 분석되는지, 더 나은 화면 구성은 무엇일지, 지금처럼 많은 고민을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깔끔하고 완성도 높은 개발, 그리고 약간의 커뮤니케이션 정도면 나의 공식적인 역할은 끝이다. 물론 이보다 더 주인의식을 가지고 여러 방식으로 대화를 하고 개선점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분명 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는 행동이었다. 나의 역할은 개발이고, 더 나은 UX와 서비스는 기획자의 역할이다. 어느 정도의 의견을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잘못 말하거나 실수하면, 참견이고 오지랖으로 보일 수도 있다. 내 경우엔 같이 협업한 기획자가 참 좋은 사람이라 다행이었다. 사실 역할에만 집중한다는 것이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기술적 성장에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반면 토스는 서비스에 집중한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어느 점에서 이탈률이 높은지,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계속 대화한다. 물론 결정권자는 있다. 하지만 조직장은 아니다. 서로서로가 본인의 영역에서 의사결정을 한다. 하지만 독단적으로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듣고,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한다. 그래서 다들 더 바쁘고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토스팀에서의 기술적 성장을 생각해보면, 단순한 호기심과 관심보다도 고객에게 더 나은 UX를 더 빠르게 제공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환경

토스팀에서의 업무 환경은 참 경이롭다. 일단 모두를 믿는다. 서로를 믿는다는 게 당연하게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밑도 끝도 없이 모두를 믿고, 토스팀 정도의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는 회사가 많진 않을 것 같다. 자유로운 출/퇴근, 원격 업무, 휴가 그리고 무제한에 가까운 식비 제공, 무료 편의점, 무이자 1억 대출, 자유로운 업무 장비 등이 있다. 솔직히 책상이 좀 좁은 것 빼곤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팀원 누구도 이런 혜택을 오남용하지 않는다. 사실 난 그렇게 엄청난 도덕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회사를 가면 믿음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지고, 더 조심하게 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사내 모든 자료가 오픈돼있다(물론 연봉은 비공개). 이를 백대영이라고 표현한다. 내부 공개 100%, 외부 공개 0%라는 뜻인데, 회사에 다니다 보면 회사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이 생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바로바로 찾아보고 알 수 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점은 분명 점점 더 회사와 나를 친밀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업무에 대한 동기부여도 된다.

이직 잘 한게 맞을까

이렇게 쓰다 보니, 분명한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최고의 선택이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일단 책상이 좁고.. 스스로의 성장을 위한 어떤 계획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회사의 성장만큼 내 성장도 따라가야 하는데, 난 아직 의지가 약한단 생각도 든다. 전 회사에서는 아무래도 기술 자체에 대한 집중도가 더 높았고, 여기에 맞춰서 업무를 따라가면 나의 성장도 같이 이루어지는 느낌이었다면 토스팀은 업무와 자기 계발/개발은 별개로 느껴지는 점이 있다. 업무와 자기 성장은 별개인 게 맞을 수도 있지만, 아직 익숙지 않게 느껴진다. 사실 스스로 개선해야 할 점이다. 그래서 토스팀으로 이직은 나쁜 선택은 아니고, 오히려 스스로 더 개선해야 할 점을 찾았다는 것에 감사한다.